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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차 기획 contents] 인물이야기_클레오파트라
제목 [2주차 기획 contents] 인물이야기_클레오파트라
작성자 아르테티크 (ip:)
  • 작성일 2018-01-25 17: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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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 7,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이팜므파탈이란 단어를 말하면 자연스럽게 클레오파트라를 떠올린다.

그만큼 클레오파트라는 역사상 최고의 미인이고, 그녀가 가진 대단한 성적 기교 때문에 남자들을 유혹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안토니우스를 유혹하여 로마를 혼란에 빠지게 한 여성으로도 기억한다.

 

왜 이런 인식들이 자리를 잡은 것일까? “영웅전을 쓴 그리스시대의 정치가이자 작가인 플루타르크는 클레오파트라를 안토니우스를 파멸시킨 교활한 여자, '나일 강의 세이렌'이라고 표현했고,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클레오파트라를 몬스트롬’ (숭배의 대상 또는 조심해야 하는 대상, 괴물의 어원이 됨.)이라 기록했다. 그 이후, 클레오파트라는 남자를 망치는 요부라거나 역사를 뒤바꿀 정도로 콧대 높은

여자로 근 2천 년 동안 성적으로 매력이 있는 여성이 되었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 안토니우스와의 관계를 이어 갈 수 있었던 것은 미모가 아니라 뛰어난 지성 때문은 아니었을까?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만들었던 동전을 보면 매부리코와 도톰한 얼굴, 넓은 이마를 가진 미인과는 거리가 멀다.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럼 클레오파트라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자.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의 여왕이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최후의 왕이다. 그녀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유언에 따라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이집트를 공동 통치하게 되었다. 남매의 연합통치는 왕가의 순수한 혈통을 지키기 위한 이집트의 관습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가는 최소 50년간 내분에 시달렸다. 끊임없는 배신과 암살이 왕궁을 지배했다. 때문에 이집트 왕조가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로마로부터 빌리면서 로마의 영향력은 강해졌다. 로마 통치자들의 입장에서 이집트는 자신들의 백성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식량과 땅이 있었지만, 이집트의 막강한 부를 관리하는 로마 총독은 로마의 권력자를 위협하는 세력이 될 수 있었기에, 쉽사리 이집트를 장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 이 위태로운 관계가 깨질지 몰랐기 때문에 이집트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당면한 큰 과제는 로마와의 관계에서 이집트의 독립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클레오파트라는 여왕과 동생간의 권력다툼을 중재한다는 이유로 군대를 이끌고 들어온 카이사르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를 만나기 위해 자신을 양탄자에 말아 궁전으로 은밀하게 들어갔다. 이런 카이사르와의 인연으로 클레오파트라는 동생과 그 세력을 패사시키고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막강한 절대권력자에게서 나라를 지켜 낸 비법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냉철하고 계산적인 권력자가 단지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계획을 수정할 수 있었을까? 이는 귀중한 영토와 정치적 입지를 포기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놓는 결정이었다.


 

이를 보았을 때, 단순히 클레오파트라의 외모가 뛰어났기 때문에 그를 사로잡았다 설은 설득력이 약하다. 클레오파트라는 지성이 뛰어난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그리스어, 이집트어뿐만 아니라 아람어와 시리아어에 능통했고, 그리스 석학과 토론이 가능할 정도의 과학자이자 철학자였다. 또한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었으니 카이사르가 당연히 반하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이후 카이사르가 부르터스 너마저하며 세상을 떠나자,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진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를 지키고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새로운 동맹이 필요해졌다. 카이사르의 부하인 안토니우스는 그녀의 새로운 발판이 되었다. 그녀가 안토니우스를 매혹시킬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계산이 바탕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폭음과 폭식이 만연한 사치스러운 연회를 열고 세상에서 가장 큰 진주로 만든 귀걸이 한쪽을 빼서 포도주에 한 잔 녹여 제공했다. 이런 사치에 로마인들은 흥분되었다. 즉 그녀는 성적매력, 금전적 욕망 그리고 음식에 대한 자극을 활용해 보상시스템을 계속 작동시켰던 것이다.


 

또 하나의 관점은 로마인들은 이집트를 신비하고 이국적이며 강력한 신들이 영원히 거하는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의 신앙을 조정했다는 설이 있다.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를 초자연적인 존재로 인식해 진심으로 그녀를 여신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또한 클레오파트라도 자신을 이시스’(이집트의 최고의 여신으로 다산의 여신, 사랑 여신과 동일시 된다.)라 내세웠다. 클레오파트라의 로마로 로마를 공격하는 책략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으나 옥타티비아누스와의 악티움 해전에서 패하게 되면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녀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설들이 있다. 플루타르크는 뱀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단지 뱀의 자취 같은 것이 발견되었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이 때문에 클레오파트라가 독사에 의해서가 아닌 독약에 의해 사망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세기의 미인, 남성을 홀리는 고혹적인 미녀로 이미지화 되면서 오히려 그녀의 뛰어난 지성, 화술, 결단력 그리고 노력들이 가려졌다. 승자인 로마인들의 관점에서 특히나 남성적 관점에서 역사가 써지면서 클레오파트라의 정치능력이나 여장부다운 배포는 묻히게 되었다. 사실 그녀는 뜨거운 여인이라기 보다는 학자 풍이었으며, 파피루스에 기록된 역사서를 보면 무려 10개 국어에 능통했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는 인류 역사상 실존했던 여성 가운데 이브와 성모 마리아 다음으로 가장 많은 글에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사료가 많지 않아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이제는 그녀에 대한 진전된 해석과 설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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